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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휠체어 엄마와 아이 둘의 '사이판 한달 살기'-④

관리자 2023년 08월 30일 14:34 조회 155

지난 글에서 사이판으로 가는 항공권, 장애인 렌터카, 게스트하우스 숙소, 현지 학교 스쿨링까지 준비 과정을 썼다. 이제 휠체어 엄마와 연년생 아이 둘의 사이판 한 달 살기는 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현지 학교의 개학일이 우리나라 설날 연휴와 겹쳐서 설날 당일은 시댁에 갔다가 다음 날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한 달을 지내며 도움이 될 현지 사이판 정보를 검색하며 꼼꼼하게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이판으로 출발하기 2주 전,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점심 시간에 정수기 물을 받다가 공교롭게도 뜨거운 물을 허벅지에 쏟고 말았다. 뜨거운 걸 늘 조심한다고 하는데, 회사에 있는 정수기 높이가 내 앉은 키보다 높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허리 중심을 잡지 못해서 뜨거운 물은 두손으로 받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흉추 3~5번 손상, 척수장애인인 나는 가슴 아래로 감각이 없다. 그래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화장실에 가서 옷만 갈아 입었다. 업무를 다 마치고 저녁에 퇴근을 해서 보니 허벅지에 화상 물집이 엄청나게 잡혀 있었다.​

모자이크를 엄청 했는데도 보기에도 심한 화상 모습. ⓒ 박혜정
모자이크를 엄청 했는데도 보기에도 심한 화상 모습. ⓒ 박혜정
감각이 없는 곳은 조그만 상처도 잘 낫지 않고, 자칫하면 욕창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에는 정말 부위도 크고 좀 심하게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다음 날 화상 전문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보시고 심재성 2도~3도 화상이라 가피절제술과 피부이식까지도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셨다.

​하아~ 수술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도 걱정이 되었지만, 당장 2주 뒤에 떠날 사이판 한 달 살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정말 이렇게 무모하고 대책없어도 되냐며 비웃을지 모르겠다. 몸 상태가 이런데 여행을 고민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온 30년 가까이 욕창이나 화상이 있다고 드러누운 적은 2~3번밖에 없었다. 물론 절대 건강에 대해 호기를 부리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더 심각한 상황을 못 겪어서 간사한 마음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이판을 가지 않는다고 일과 생활을 하지 않을까? 그건 분명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화상을 입은 건 벌어진 일이지만,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감각이 없어서 아픈 걸 모르고, 앉아 있을 때 전혀 닿지 않는 허벅지라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속사정을 말씀드리고 수술은 다녀와서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가기 전까지 치료해보자고 하시며 혹시나 상태가 안 좋으면 현지 병원을 꼭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녀와서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그나마 빨리 나을 거라고 하셨다. 가서 매일 소독과 드레싱을 하고 덧나지 않게 치료하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많이 여행을 다니며, 가기 전 일이 꼬이고 여행을 포기할 만한 일이 생기는 걸 수없이 겪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37일 간의 가족 여행 직전에도 엉덩이 욕창을 두군데나 발견해서 망설이고, 가기 전 심한 몸살을 겪고 너무 힘든 상황에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여행을 가기로 계획한 지역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터져서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

제발 화상 상태가 악화되지만 않기를 바라며 사이판 한 달 살기는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 Pixabay
제발 화상 상태가 악화되지만 않기를 바라며 사이판 한 달 살기는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 Pixabay
하지만 아마도 나는 굴하지 않고 그때도 떠났고, 지금도 떠날 것이다. 왜냐면 오랜만에 꿈꾸던,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니까.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지만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었다.

큰 일을 하나 겪었으니 이제는 순탄하게 여행이 진행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돌발 상황이 또 생겨 버렸다! 사이판 한 달 살기를 떠나기 전에 뭐가 이리 우여곡절이 많이 생기는지... 사이판 가기 전에 액땜을 제대로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설날 연휴 전 날, 현혜가 다니는 줄넘기 학원에서 게임을 하다가 첫째 현이가 다른 아이와 부딪히면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제껴지며 다쳤다고 연락을 받았다. 집에 와서 보니 움직이는 건 상관이 크게 없는 듯해서 소염진통 연고를 잔뜩 바르고 붕대로 고정을 해줬다.

손가락을 다친 첫째 현이의 부상은 큰 일 아니라 생각했다. ⓒ Unsplash
손가락을 다친 첫째 현이의 부상은 큰 일 아니라 생각했다. ⓒ Unsplash
그리고 설날 연휴가 되어 시댁에 갔다. 명절 때 만나는 남편 친구의 사촌동생이 물리치료사인데, 현이 손가락을 보더니 성장판의 문제도 있으니 꼭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날 부랴부랴 설날 당일하는 정형외과를 급하게 검색해서 부산 집에서 끝인 거리의 먼 곳까지 갔다.

​의례히 엑스레이 찍고, 인대손상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찍고 보니 손가락 두번째 마디 쯤에 작은 뼛조각이 보이는 거다!! 의사 선생님 말이 뼈가 부러졌다가 다시 자리를 찾은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뼛조각이 중요 부위에서 떨어졌다면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CT를 찍어 성장판과 뼛조각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아.. 이 얘기를 듣고는 정말 깜깜했다. 아이 손이니 걱정이 너무 되기도 했다.

​어쨌든 CT를 찍고 엄청 걱정하며 기다렸고,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나 얘기를 들었다. 휴~~ 천만다행히 뼈가 제자리에 정확히 있기 때문에, 중요 부위의 뼛조각은 아닌 듯하다고 반깁스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첫째 현이의 손가락 중요 마디의 뼛조각이 부서진 줄 알고 얼마나 놀라고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 박혜정
첫째 현이의 손가락 중요 마디의 뼛조각이 부서진 줄 알고 얼마나 놀라고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 박혜정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모른다. 수술까지 해야 했다면, 현이의 손가락도 성장하는 시기에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엄청나게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또, 만약 사이판을 못 가게 되었으면, 우리 현이가 엉엉~ 울었을거라고 한다. 당연히 나도 엉엉~ 울었을 것 같다.

​이런 커다란 두 번의 일을 겪고 나니 사이판에 가서도 우여곡절이 한 두개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그렇다! 여행도, 인생도 우여곡절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또다른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차근차근 헤쳐나가면 된다! 물론 정말 힘들고 좌절하고 때론 한계라고 느낄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쉽게 좌절하기에 나는 여행이 너무 좋아서 꼭 가고 싶고, 쉽게 포기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니까 말이다.

​드디어 내일 사이판 한 달 살기, 진짜 출발은 할 수 있는 거겠지? 부디 조심히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있기만을...

더이상 우여곡절이 없기만을 바라며, 내일 사이판으로 출바알~! ⓒ Unsplash
더이상 우여곡절이 없기만을 바라며, 내일 사이판으로 출바알~! ⓒ Unsplash
* 사이판 현지 살이 내용을 많이 기다리실 것 같지만, 가기 전 만만치 않은 준비 과정이 많은 분들께 필요하실 것 같아 꼼꼼하게 쓰고 있습니다. 다음 칼럼은 전체적인 해외 여행 준비물 편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께서 의외로 많이 제게 질문해 주셔서 글을 기획하고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이판 현지에 가서 살아보기 첫 편은 7월 15일 전에 꼭 쓸게요!ㅎㅎㅎ 저도 사실 글을 빨리 쓰고 싶어 근질근질합니다만, 본업도 있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휠챠녀 칼럼 기대해주실거죠? 감사합니다! <계속>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