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분들은 새로 산 아파트에 들어가면 좋아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해요. 공동현관문 조작부터 전등조차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거든요.”
아파트 공동현관 등에 설치된 홈네트워크 시스템이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
홈 네트워크란 가정에서 쓰이는 모든 전기·전자 제품이 유무선 시스템 하나로 연결되어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미래형 가정 시스템이다.
가정 기기를 원격 조종하는 기능 뿐 아니라 가전제품끼리 데이터 송수신을 통해 정보 교류, 모니터링, 보안에 이르는 첨단 기능을 자동으로 조절·제어하면서 현재 일상생활에 녹아들고 있다.
현행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지침’ 제4조(보편적 설계)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정보통신 제조업자는 무리한 부담이 되지 않는 한 장애인·고령자 등이 정보통신서비스와 정보통신제품을 별도의 보조기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장애를 가지지 않은 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과 내용의 설계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 홈네트워크 시스템은 가정에서 쓰이는 모든 전기, 전자 제품이 유무선 시스템 하나로 연결돼 쌍방향 통신이 가능하다.ⓒ픽사베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홈네트워크 시스템 대부분이 시각장애인에게 친절하지 못하다.
점자나 음성안내가 지원되지 않거나 조작(터치 방식)이 어렵고, 직접 벽에 위치한 홈네트워크를 찾아서 조작해야 하는 등 비장애인 기준으로 설치되어 불편을 겪는 것. 별도의 키패드 없이 터치스크린을 조작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들은 번호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연구원은 “공동현관문부터 터치패드를 누르고 가게 돼있다. 내가 살면 어떻게든 익혀서 들어간다 해도 지인집에 방문시에 난감하다”면서 “기계별로 표준화가 돼있지 않아 별표, 우물정자 누르는 등의 방법이 제각각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단돼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어렵사리 집에 들어간다 해도 전등, 가전제품 등을 하나로 중앙제어 장치 또한 터치식, ‘산 넘어 산’이다. 김 연구원은 “전등을 끄고, 키고, 제품을 키고 켜고 한 번에 할 수 있다는데 터치형식으로 돼있으면 가만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거로 생활하는 김 연구원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지만, 그마저도 소용없다고 했다.
“제가 24시간 받는것도 아니고, 하루 8시간 정도인데, 그 8시간 안에만 버튼 조작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급할 때도 조작해야 하는데…손 하나 까딱 못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밖에요.”